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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사진 슬기로운 감빵생활(부제: 어느 장기수의 이야기)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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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의정부교도소 ⓶

 

오래전 일본영화 중에 젊은 남녀가 만나서 사랑에 빠졌는데 채 일주일이 안되서 대동아전쟁이 난거야. 그래서 남자가 징집이 되고 그 이후로 소식이 끊겼는데 그 여자가 그 남자를 30년 넘게 기다리지....그걸 본 어떤 사람이 그러더라고. 와...역시 사랑의 힘은 위대한가보다 어떻게 일주일을 만났는데 30년을 기다릴 수 있지? 그래서 내가 그랬지...

일주일을 만났으니 30년을 기다릴 수 있는 거지 30년을 만났으면 일주일도 안 기다린다고.

 

한참 좋아하던 시절에 두고 온 애인이라 징역내내 그립기는 했지. 특히 막 구속되고 구치소에 있을 때 제일 힘들었던게 외부편지 전해주는 직원이 우리 방 그냥 휙 지나갈 때 였으니까...

 

그 여친은 여러 정황으로보아 빠르게 나를 손절하는 거 같더라고. 심지어 내가 사형구형 나온 걸 듣고 편지가 왔는데 (일반인들은 구형과 선고의 차이를 몰라서 이 친구는 내가 사형선고를 받을 걸로 인지한 상태) 내용이 이래... 사형이 나와서 자기도 엄청 놀랬다 어쩌고 저쩌고....근데 우리가 같이 산 그 차 할부금은 어떻게 해?

 

네...그렇습니다. 현실은 동화가 아니죠.

(출소후에 카톡으로 딱 한 번 대화나눴음. 이미 두 아이의 엄마)

 

전편에서 이야기했던 의정부에서 내가 만난 대학동기...당시 우리나라 M&A(기업인수합병) 업계의 원탑이었어. 원래 대학졸업하고 유명 증권회사 전략기획실의 거시경제 애널리스트로 입사했는데 우연히 기업구조조정의 실무팀장으로 있다가 기업인수합병에 눈이 떠져서 퇴사하고 전문 투자조합을 만든거지. 그래서 한 때엔 이름만 대면 알만한 코스닥 등록기업 7개의 대표이사로 동시에 등기가 되어 있었을 정도니까.

그래서 의정부교도소에서도 이 넘이 교육생으로 온다는 소문이 나서 운동시간에 운동장에 나가있으면 이 친구에게 어떻게든 선을 대볼 요량으로 이 놈 저 놈 다가와서 인사하곤 했는데 이 넘이 워낙 사람을 가리고 성격도 까탈스러워서 누구에게도 거의 곁을 안줬음. 심지어 그 대 의정부교도소에 유명 재벌그룹 3세가 한 명 있었는데 내 친구랑 바깥에서부터 아는 사이라서 한 번씩 운동시간에 얼굴보면 내 친구가 그 친구 개무시했음.

암튼 그런 넘이 유일하게 마음열고 붙어다니는 사람이 나 밖에 없으니...솔직히 내심 아..내 인생 말년이 이 넘 때문에 꽃봉오리처럼 피어나겠구나 싶었지..그 때만해도.

 

영어교육은 캐나다인 2 미국인1 3명이 원어민 강사로 들어오고 문법교육 때문에 한국인 고려대교수 1명이 들어와. 그리고 매일 미국 시트콤 “프렌즈” “가쉽걸” 이런 걸 봐. 중간 중간 자막없이 영어 영화보고, 매일 퀴즈(쪽지시험), 매주 모의토익시험을 보고...

 

근데 1년 내내 교육생 석차가 1-3위에 세 사람 말고 다른 사람이 들어 온적이 없었어. 그 쓰리탑끼리 중간중간 순위가 바뀐 적은 있어도 그 외에 다른 사람들이 3등 안에 들어온 적이 없었지. 한 명은 갓 스무살 넘긴 어린넘이었는데 거의 언어능력을 타고났고, 다른 한 명은 내 대학 후배였어. 영국 유학까지 같다 온 놈이라 아주 우아한 브리티쉬 영어를 구사하지. 그리고 나머지 한 명이......네. 접니다.

그러던 사이 내가 S2, 즉 2급수로 승급이 됐어. 초반부터 징역깨지고 12년 형기중 전반기 6년동안 출역도 안나가서 2급수가 될 수 있을거라곤 생각도 못했는데 저번에 이야기했던 수용자 등급이 일원화 되면서 엉겁결에 3급 달았던게 아주 신의 한 수가 됐던거지.

 

말했잖아. 2급수가 되면 가석방 심사대상이라고,,,징벌전력이 있는게 좀 불리하긴 했지만 시간이 오래지나면 그것도 형의 실효에 관한 법률(모든 형사처벌기록은 처벌이 종료되고 나서 7-10년 정도 지나면 없어져. 물론 검경에서 하는 범죄경력조회에는 다 뜨지.)에 맞춰서 없어져. 기록이 완전히 없어지는 건 아니고 그냥 무슨 처우 심사할 때 1차적으론 징벌을 안받았던 사람처럼 취급해준다는 거지.

 

그래서 그 영어교육생 과정이 거의 끝날 때쯤 내 징역 12년 중 10년 정도가 지나고 있었어. 가석방이 가능한 기본급수도 달았고....

당시 임출이어서 새벽에 나와서 교육생 사동 배식 준비 끝내고 소지간(임출들이 거하는 사무실인셈)에서 커피 한 잔 하고 있으면 멀리서 여명이 밝아오기 시작하지. 먼가....출소라는 게 그리 먼 미래가 아니더라고.....

 

그리고 마지막 정식 토익시험이 있었어. 나름 외부 시험관리자들이 들어와서 객관적으로 시험을 봐. 아까 말한 세 명중에 2명이 만점을 받았어. 나머지 한 명이 좀 실수를 해서 960점을 받았어....네 그것도 접니다.

 

그래서 마지막 졸업식때 3등까지 소장표창장을 수여하는 데 3등으로 스킨로션세트를 받았어.

 

그리고 다시 이송을 띄우는데 나는 대구교도소에서 왔지만 교육 중에 2급수로 승격하는 바람에 대구가 아닌 경주교도소로 가게 됐어. 거기가 내 수감생활의 마지막 코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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