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감빵생활(부제: 어느 장기수의 이야기) 5
컨텐츠 정보
- 358 조회
- 1 댓글
- 4 추천
- 목록
본문
5. 1심 선고.
선고 당일. 당시 대구 구치소에서 제일 쎈 구형을 받은 사람이 나랑 대구전철 방화범이었어(그 방화범 때문에 300명 넘게 죽었지) 나랑 같은 재판부였고 마침 선고일도 같았어. 호송할 때 나랑 같은 호송줄에 묶였지. 보통 재소자 여러 명 호송할 땐 각각의 재소자에게 수갑을 이중으로 채우고 그 수갑찬 재소자 다섯 명 정도를 밧줄하나로 굴비 엮듯이 엮어. 그리고 신발은 무조건 고무신을 신겨. 시설 안에서는 운동화 사서 신는데 이송 중일땐 무조건 고무신이야. 고무신을 신으면 달리기 힘들거든.
내 앞으로 여러 명의 선고가 먼저 있었는데 대구전철 방화범만 아니라 그때 기관사랑 지하철 관련 직원들도 여러명 업무상 과실치사죄로 재판 받았는데 금고 3-4년 이렇게 선고 되니까 방청석에서 가족들 통곡하고....법정이 아주 난리가 났어. 그리고 내 차례가 됐는데....
원래 판사가 판결문 읽을 때 좋은 이야기로 시작하면 형벌이 나쁘게 나오고
나쁜 이야기로 시작하면 형벌이 좋게 나오는 건 국룰이야.
일테면 “죄질이 불량하고...그 피해가 상당하며....” 이렇게 시작하면 뒤에 “그러나 피해자가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으며 이전에 별다른 형사처벌 전력이 없는 초범인점....” 등등으로 쉴드쳐주면서 가벼운 형을 선고하는데 반해서
“피해자와 원만히 합의에 이르렀고 당시 피고인의 정서적 불안 등이 인정되며.....”로 시작하면 “그러나 그 범행수법이 잔혹하고...” 어쩌고 하면서 중형을 때려버려.
판사가 판결문 읽기 시작하는데 나쁜 이야기부터 나오더라고....그리고 당시에 좀 상황이 불리했던게 유족들과 아직 합의를 보기 전이어서 구형을 감안하면 무기가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지. 근데 판사가 말미에 이런 저런 나에게 유리한 정황을 언급하면서 15년형을 주더라고.
구치소로 돌아오니 혁수정이고 수갑이고 다 풀어주더라고, 직원들이 축하한다면서. 죄인이 축하받는다는게 좀 거슬릴수도 있겠지만,,,,어쨌거나 교도관도 우리랑 오래 지내다 보면 문제수 아닌 이상 동정같은게 생기다보니.
그런데 당연한거지만 검찰측에서 내 사건 선고에 대해서 불복하고 항소를 했어(검찰이 불복하고 항소하는 걸 부대항소라고 해) 그리고 일단 나도 항소를 했어. 사실 나도 1심 진행 중에 검찰에서 자포자기 심정으로 순순히 인정했던 몇 가지 항목에 대해서 진술을 수정하기 시작했어. 사건 직후의 폭풍같은 시간이 지나고 나니 기회가 된다면 가능하다면 사회로 한 번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들더라고. 자식을 감옥에 두고 부모님이 돌아가시게 할 수는 없잖아.
와중에 희소식이 날아 들었어. 피해자 유족과 합의를 했다고. 당장 큰 돈이 없다보니 부동산 하나를 명의이전시켜주고 합의서를 받았대. 그리고 피해자 가족이 재판부에다 내 선처를 바라는 탄원서까지 제출했다더군.
2심 재판에서 나와 내 변호인은 꾸준히 미필적 고의를 주장했어.
일반사람들은 사람이 사람을 죽이면 무조건 살인이라고 생각하는데 행위의 결과는 똑같아도 그 내용에 따라서 처벌에는 일정 단계가 있어.
무죄: 정당방위나 긴급피난
정당방위는 다들 알테고 긴급피난은 일테면 갑자기 앞차들이 추돌해서 그거 피할려고 핸들 급히 꺾었다가 다른 사람을
치어 사망에 이르게 한 경우 같은 거.
(업무상) 과실치사: 의사가 수술하다 실수로 환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경우 등.
이 경우 벌금이 나오는 경우가 많고 중과실치사의 경우에도 금고 3년 정도 나옴.
폭행치사 : 서로 싸우거나 일방적으로 두들겨패다가 상대방이 사망한 경우
초범이면 집행유예도 가능하고 실형선고를 받아도 3-5년 경우가 대부분
상해치사 : 싸우거나 폭행중에 야구방망이나 쇠파이프같은 흉기로 상대방이 사망한 경우
통상 5-7년 정도 나옴.
미필적고의에 의한 살인 : 죽일려고 작정한 건 아니지만 내가 이렇게 하면 상대가 죽을 가능 성이 있다는 걸 인지하면서도 행위를 지속한 경우
대법원 판례는 미필적고의는 고의에 준하는 걸로 본다고 하지만 실제 선고에선 완전한 고의에 비해서 10-20퍼 정도 형을 깎아줌.
살인 : 말 그대로 죽일려고 작정하고 시작한 거.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10~15년 정도 나옴.
그리고 2심 선고일이 잡혔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