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와 김치만두(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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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누군가 나에게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이냐 물으면
나는 고민도 없이 항상 '만두' 라고 말을한다.
고기만두? 김치만두? 둘중 어느거를 좋아하냐 물어보면
'김치만두' 라고 답변 하지만 항상 '고기만두'를 시켜먹는다.
초등학교 4학년 시절 가정사 때문에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와
함께 살게 되었다. 도시에 있다가 시골로..시내에 나가려면
버스도 1시간에 한대 다니는, 자전거를 타도 50분정도를
가야 오락실이나 기타 시설들이 있는곳을 갈수 있었고,
슈퍼마켓도 동네에 한곳뿐인 곳에 살아야 한다는게 당시
어린 나로써는 달갑지 않은 일이었다. 거기에 해병대 부사관
월남전 참전용사 출신이신 엄하디 엄하신 외할아버지의
존재도 나에게는 좋을리 없었다. 하지만 어쩔수 없이 중학교 2학년이 될때까지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와 살게 되었다.
일찍 결혼을 하셔서 일찍 나를 나으신 덕에 이모 외삼촌들은
미혼, 또는 아직 애기가 없어서 할머니께서는 나를 친손자
이상으로 챙겨 주셨다. 할머니께서는 음식 솜씨도 좋으셔서
나에게 요리를 가르쳐주셨는데 엄마는 내 음식에서 할머니 맛
이 난다며 지금도 좋아하신다. 그렇게 할머니와 살다 중2때
다시 부모님과 살게 되었지만 집을 읍내에 얻어서 배고프면
할머니댁에 밥먹으러 가고, 할머니께서도 집에 반찬등을
가져다 주시러 자주 오가셨다. 세월은 흘러 나에게도 사춘기가 찾아와 가출도 하고 사고도 치고 했지만 할머니께서는 그때마다 내편을 들어주시며 괜찮다 괜찮다 해주셨다.
우리집 명절은 전통이 있는데 명절 전에 온 가족이 모여 김치만두를 어마어마한 양을 만들어서 거의 1년을 먹는 전통이 있었다. 그래서 할머니댁에 가면 거실에 따로 있는 냉동고에서
언제나 맛있는 김치만두를 먹을수 있었다.
어느덧 나도 성인이 되어 시골을 떠나오니 먹고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할머니댁에 방문하는 횟수도 줄어들었고 명절때나 겨우 찾아가서 만들어놓은 김치만두를 먹고 도망치듯 집으로 오곤 했었는데...28살 여름날..편의점 야간 알바를 하고있는데
갑자기 어머니께 전화가 왔다.
"할머니 위독하시니까 지금 당장 xx병원으로 와"
거짓말인거 같았다. 하늘이 무너지는줄 알았다.
불과 몇일 전 까지만 해도 엄마와 같이 여행도 다녀오셨는데
어떻게 이렇게 갑자기..,
소식을 듣고 너무 믿기지 않아 눈물조차 나지 않았다.
가게를 점장님께 맏기고 병원으로 택시타고 도착했을때
이미 할머니께서는 돌아가신 뒤였다.
그렇게 장례식을 치르는동안 이상하게 눈물은 나지 않았지만
마지막 화장 전에 모습을 보고는..그만 대성통곡을 했다.
그제서야 이게 마지막이라는 실감이 났다...
그렇게 할머니를 납골공원에 모신지 어느덧 10년...
난 지금도 김치만두를 사먹지 않는다.
어디서 어떤 만두를 먹어도 할머니께서 만들어주신
그 맛을 찾을수 없어서...그것보다 맛있는 김치만두가 없어서







